Kiaf.org는 Internet Explorer 브라우저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습니다. Edge, Chrome 등의 최신 브라우저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질량이 없는 사람들

오는 10월 11일부터 11월 1일까지 약 3주간 정민기 작가의 <질량이 없는 사람들> 전시가 개최된다. 작가는 실체가 없거나 질량이 수시로 변화하는 사람들을 ‘질량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유했다. 수십억 명과 함께 살아가지만, 작가가 그리는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실체가 희미한 이들이다. 그들은 ‘신화 속 주인공’이거나 ‘인격화 된 추상적 개념’, 혹은 금방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미디어 속 인물들’이며, 서서히 사라져가는 ‘동시대 사람들’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인간관계나 정보들 사라지는 정체성들도 ‘질량이 없는’ 상태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스쳐 지나가지만, 그중 대부분은 우리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져 간다. 빠르게 변화하고 사라져가는 현대사회, 인간 관계 등의 내용을 주제로 작가는 천, 실, 바늘, 재봉틀 등 다양한 방법과 기법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천 위에 실과 바늘 또는 공업용 재봉틀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천으로 형태를 만들어 형상을 만들고 해체하기도 하며 작가만의 언어로 표현한다. 재봉틀로 드로잉을 한 작업을 보면 재봉틀의 빠른 봉제 속도를 컨트롤하며 의도되어 있지만 즉흥적인 박음질 선으로 그림을 그린다. 평면부터 입체, 다양한 물성 등 폭넓은 스펙트럼 안에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질량이 사라지고 껍질만 남았다. 그 껍질에는 인간의 무늬가 남아 있다. 인간의 무늬는 철학, 문학, 사학 등 인간 고유의 정신 활동을 나타내는 ‘인문’이다. 삶은 고유한 무늬를 만들어 가며, 타인의 삶과 구별된다. 죽음 이후에는 그 삶의 무늬만 남는다. 내가 기록한 무늬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 지나간 사람들, 사라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역사 속에 남아 있지만, 실체가 없거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사람들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고대 신화 속 주인공이거나 의인화된 추상적 개념이다. 지나간 사람은 역사에 이름을 남겼으나 실체가 흐려진 이들이며, 사라진 사람은 한때 실재했으나 이제는 기록과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진 이들이다. 나는 삶과 죽음, 영속성과 소멸에 대한 고민을 다룬다. 작품이 오래 보존되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구기고 봉합하며 찾은 형상과 해체 후 발견한 우연의 무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했다.

삶의 무늬는 개개인의 유한한 생명 활동에서 비롯된다. 나는 사라지고 소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했다. 바늘과 실은 내가 발굴한 보이지 않는 것들의 형체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삶의 모습을 기록하며 나 자신도 반추할 수 있었다. 또한 인간을 넘어 다양한 생명체와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대의 종들에 대한 존중도 담아내고자 했다. 사라진 질량을 찾아주는 것이 마치 나의 소명처럼 느껴진다. -정민기 작가노트중

Share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