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IES] GALLERY SEIN
2023. 6. 13 – 6. 23
최희수
아름다움, 그 근원의 뿌리
작가의 정서적 힘은 차별화된 작품으로 드러난다. 자연과 사물에 반응하는 정신적인 교감에 따라 정련된 감각으로 조형성을 표출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작가부터 이미 만들어진 오브제에서 특출한 미를 발견하는 작가 등 다양하다. 한편, 정신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들은 개념적인 표현으로 더 접근한다.
최희수 작가는 근원적인 생명을 찾아가는데 주목한다. “흠 많은 존재가 아름답다”라는 소신으로 삶의 층을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특히 아름다운 존재에 주목하기 보다는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너머, 근원의 아름다움을 찾기에 매진한다. 활짝 핀 꽃이 말라버린 자리, 반반한 땅에 비와 눈이 내려 변화하고, 천에 주름이 지고, 탄탄한 삶이 아닌 굴곡진 삶의 과정으로 변화되어가는 것 등에 애정을 갖는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마대’라는 특수한 오브제를 사용한다.
마대는 황마(黃麻/Jute)를 이용한다. 기존 회화에서 사용하는 팽팽한 캔버스가 아니다. 천의 자연스런 형태를 살피고 천의 굴곡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천천히 굵은 실과 바늘을 이용해 꿰맬 때 변형된 형태에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근원을 끌어낸다. 재료 특성상 손바느질은 지난한 노동의 시간이다. 마대를 캔버스 틀에 덮은 후 천천히 꿰맨다. 그리고 여유분이 나오면 그것을 토대로 다시 꿰매 들어간다. 팽창과 이완의 과정에서 차츰 의도하지 않는 작가의 주관적 시선으로 판단된 조형적 형상이 드러나면 작업은 마무리되고 캔버스가 완성된다. 꿰매는 행위는 느린 드로잉이다. 작가는 2008년 [낙서로 시작하는 드로잉]를 출판했다. 작가에게 드로잉은 창작의 시작이자 완성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업실에서도 오랜 작업 활동 동안 꾸준히 진행한 방대한 분량의 드로잉을 확인했다.
작가는 팽팽한 기성 캔버스에 드로잉이나 물감으로 그려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회로 돌아간다. 천천히 바느질을 하며 바라보고, 다시 관찰하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바느질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혈관 같다고 한다. 마대로만 불리어진 사물에 생명이 부여되는 현상이다. 화려하지 않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애정을 갖는 작가의 마음 시선은 작업할 때도 손바느질과 함께 지속된다. 어느 시점에 드러난 형상은 마치 우연하게 얻어낸 작업처럼 작품은 그렇게 창조된다. 우연의 발견은 노련하고 감각적인 작가의 실력이다.
최희수, 1-Nostalgia, 130X160cm, Acrylic on jute, 2007
작가의 작업실 앞 마당과 내부에는 마대뿐만 아니라 나무토막, 쇠붙이, 부서진 의자, 드럼통 등의 재료들이 가득하다. 작가의 시선은 버려진 물건으로 향한다. 거칠고 흠집이 있는 것들을 손질하며 어떻게 창작할지 몰두하는 과정을 즐긴다. 리사이클링(Recycling) 과정을 거쳐 재창작된 작업들이다. 작가의 열정적인 오랜 시간의 보상처럼 평면뿐만 아니라 부조, 그리고 크고 작은 다수의 조각들로 작업실은 가득하다. 작가는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에도 창작을 위해 잉여시간까지 활용했고 학교 가깝게 작업실을 준비해 절대적인 작업시간을 확보했었다. 2012년 퇴임 후에는 오롯이 작업실에 창작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작가의 작업을 보면 다 죽어가는 나무에서 열매가 맺은 것 같다. 보이는 부분은 죽은 것처럼 보이나 뿌리가 살아있어 죽은 가지들을 정리하고 물을 주고 영양분을 주니 어느 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처럼. 작가는 반들반들한 재료와 아름다운 꽃도 좋아한다. 다만 미흡하고 흠이 있는 것에 더 마음을 내어주었기 때문에 마대를 발견하고 바느질로 영양분을 준 것이다. 작가의 예술세계는 아름다움, 그 근원의 뿌리를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정영숙(갤러리세인 대표, 문화예술학 박사)
갤러리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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